청화스님 - 깨달음 이전에 계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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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스님 계율에 대한 말씀입니다.

깨달음 이전에 계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훌륭한 행법(行法)을 취해서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계율이 앞서지 않으면 공부에 성취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계율적인 문제, 도덕적인 문제를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러 깨달음의 문제만을 중요시하는 분들은 도덕적인 문제, 윤리문제, 계율을 소홀히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부처님 법은 도덕적인 문제를 토대로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계정혜(戒定慧) 삼학도(三學道)의 법문에도 인계생정(因戒生定)이라, 계율로 말미암아서 선정이 생기고, 인정생혜(因定生慧), 즉 선정 혹은 삼매로 말미암아 참다운 반야지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계율이 없으면 참다운 선정에 못 들어갑니다. 

 

계율의 성취 없이 삼매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경에도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 즉 계율이 청정하지 않으면 "삼매불현전(三昧不現前)"이라, 즉 삼매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출가인들은 출가인대로, 재가불자들은 재가불자대로 거기에 상응한 분수에 맞는 계행(戒行)을 지켜야만 비로소 삼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계행이 선행되지 않으면 제대로 선정(禪定)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는 선정에 들 수가 없고, 도둑질하고서는 선정에 들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욕질하고 선정에 들 수가 없고, 
욕심을 내고 선정에 들 수는 없습니다. 하여튼 계율이 선행되지 않으면 선정에 못 드는 것입니다. 선정에 못 들면 구두선(口頭禪)이라 하여, 말로는 부처님 법문을 해설한다 하더라도 참다운 체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반야지혜, 공(空)지혜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오계를 잘 지켜라

계율의 첫째는 살계(殺戒)라, 즉 생명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입니다. 둘째는 도계(盜戒)라, 즉 훔치지 말라는 것이며, 셋째는 음계(淫戒), 즉 출가인들은 일체 음란한 행위를 피하며 재가불자들은 자기 배필 이외의 다른 사람과 삿된 음행을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망어계(妄語戒)입니다. 그것은 거짓말, 욕설, 이간하는 말, 꾸며서 하는 말 등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망어 가운데도 가장 큰 망어는 미증(未證)을 증(證)으로 하는 것입니다. 도를 증하지 못하고서 증했다고 하는 거짓말, 또는 도인이 아니면서 도인인 체하는 거짓 행위, 이것이 가장 큰 망어입니다. 그래서 같은 거짓말도 보통의 방편적인 거짓말은 큰 죄는 안 되지만, 도를 못 증하고 증했다거나, 또는 도를 못 통하고서 통했다고 하는 망어는 우리 승려 같으면 승복을 빼앗기고 축출당하는 중죄가 됩니다. 이것은 큰 거짓말, 이른바 대망언(大妄言)입니다. 성자(聖者)를 사칭하는 것같이 큰 거짓말이 없습니다. 

다섯 번째는 고주계(酤酒戒)입니다. 술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술을 팔고 사는 것도 허물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바세계에서는 술을 팔 수 도 있고 먹을 수도 있습니다. 부득이 해서 술을 팔 때는, '내가 파는 이 술 자시고 보리심을 내서 무상대도를 성취하십시오' 이렇게 기원하며 술을 팔면 됩니다. 술은 본래 오염된 음식이 아닙니다. 술은 이른바 만약지왕(萬藥之王)이라 하였습니다. 즉 잘 쓰면 만 가지 약 가운데 최고라는 뜻입니다. 

사바세계의 중생은 어떤 때는 직업적으로, 혹은 이런저런 인연 따라서 그런 직업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오염된 술이 아닌, 우리 중생의 병고를 다스리는 '만약지왕'으로 팔아야 합니다. '지금 저 사람이 이 술을 먹고 무상대도를 성취하겠다는 보리심을 내서 금생에 무상대도를 성취하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기원하면서 술을 팔면 큰 죄가 안 됩니다. 

 

사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여섯 번째는 설사중과계(說四衆過戒)입니다. 사중(四衆)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중은 결국 부처님 제자인 사부대중(四部大衆) 아닙니까? 출가한 비구, 비구니, 널리 보면 신부나 수녀나 다 같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사실 불교라는 것은 불교라는 테두리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집을 떠나서, 세속을 떠나서 진리를 공부하는 분들은 비구나 비구니뿐만 아니라 신부나 수녀 모두가 포함됩니다. 출가하지 않고 집안에서 공부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이나 도교인이나 간에 하여튼 진리를 지향하는 분들이 사부대중인데,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제가 지금 열 가지 무거운 계(戒)를 말씀드리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 여섯 번째의 설사중과계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계를 범하는 분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우리 승가나 진리를 구하는 분들이 온갖 중상 비방을 받습니다. 

사중, 즉 출가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허물을 말하는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출가한 사람들의 허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죄가 무겁습니다. 같이 불교를 믿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출가한 사람들을 흔히 승보(僧寶)라고 합니다. 이른바 삼보 가운데 하나지요. 넓은 의미에서는 불법을 탐구하는 모든 분들이 다 승보입니다만 좁은 의미에서는 출가한 사람들만 가리켜서 승보라 합니다. 

절대 진리의 분상에서 보면 그때는 모두가 다 승보이지만, 차별의 분상에서 보면 출가한 사람들이 승보입니다. 그런데 비록 승보의 최종 목적은 완전무결한 성불에 있다 하더라도 아직 수행 도중에서는 완전무결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절집은 그야말로 범부와 성인이 아울러 있습니다. 성자 같은 중도 있지만, 뱀 같고 독사 같은 스님네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삼십 몇 본사(本寺)가 있습니다만 그 본사에는 도인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총무가 있고 재무가 있고 부목이 있습니다. 또한 깡패 같은 중도 있지요. 이 모든 분들이 아울러서 한 본사를 지키는 것입니다. 

불교의 명맥은 숭유배불(崇儒排佛)이 성성하던 조선조에도 이어졌습니다. 그처럼 부처님 법을 배척할 때도 불법의 명맥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시 우리 출가인들은 팔천민(八賤民)의 하나였으므로 노예 같은 천민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찮은 농부도 스님을 "여보게 대사" 하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하대를 했단 말입니다. 우리 스님네는 비록 도인이라 하더라도 서울 장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들어와서 나라의 힘이 약해졌을 때, 비로소 우리 승려가 장안에 발을 디뎠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핍박을 당하면서도 우리 불교는 명맥을 이어왔단 말입니다. 누가 이어왔는가? 물론 사부대중이 같이 협력해서 이어왔지만, 그래도 역시 출가인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수모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부처님 법을 닦고 경(經)도 출판하며 그렇게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것은 바로 출가인들 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부대중 가운데서 출가인들에게 조금의 허물이 있으면, 그걸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퍼뜨려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도를 구하는 사람끼리 서로 비방하는 죄가 무거운 법인데, 그 가운데서도 출가인들의 허물을 퍼뜨려서 비방하는 것같이 무거운 죄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보살계(菩薩戒)에 보면, 어떤 사람이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면 그것을 들을 때 마치 백 개 천개의 창이 자기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는 못할망정 하물며 스스로의 입으로 삼보를 믿는다고 하는 불자가 어떻게 함부로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범망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부대중, 진리를 구하는 분들의 허물이 있으면 개별적으로 은근히 그 사람을 만나서 간곡한 정성으로 바른 길로 나가기를 기원하면서 충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책임자, 큰스님들이나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가만히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설사중과계(說四衆過戒)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조금 잘못하면 그것을 퍼뜨려서 얘기하면 그때는 죄가 차근차근 커집니다. 

좋은 스님네와 나쁜 스님네,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는 스님네와 못 지키는 스님네를 대비해서 말씀을 해도 안 됩니다.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지 스님네들의 이런저런 허물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의 선근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도를 깨달아 가는 것만으로도 바쁩니다. 

 

참회를 받지 않아 환속하다

일곱 번째는 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입니다.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계입니다. 여덟 번째는 간석가훼계(慳惜加毁戒)입니다. 내 것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는 계입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는 진심불수회계(瞋心不受悔戒)입니다. 즉 잘못을 참회하는 이를 화내서 물리치지 말라는 계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태안사에서 10여 명의 학인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때 제가 큰 허물을 범했습니다. 아홉 번째 계인 진심불수회계를 범한 것입니다. 상대편이 참회할 때 성내는 마음으로 그 참회를 받지 않았습니다. 별것도 아니면서 나만 청정하다, 그런 상(相)을 내서 학인들 가운데서 허물을 범하고 참회를 한 사람에 대하여 제가 참회를 못 받았습니다. 

그때 담배를 피우는 데다 성격도 우악스러운 어느 수좌(首座) 하나가 싸움을 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자 그 수좌는 무시무시한 식칼을 들고 상대편을 찌르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려서 찌르지 못했고 그래서 상처는 안 났지만 그런 행위는 속인에게도 큰 허물인데 하물며 출가 수행자에게는 얼마나 큰 허물이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나무라니까, 이제 저한테도 반항을 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니까 그는 잘못을 느꼈던가 가사(袈裟)를 수하고서 참회하려고 왔습니다. 

제가 그때 보살계를 안 받은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말씀드리는 이 대목을 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까짓 녀석은 용서할 수가 없다' '너는 삼보 가운데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몇 시간 뒤에 다시 왔습니다. 그때도 안 받았습니다. 또 세 번째 왔습니다. 그래도 그 수좌의 참회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제 마음은 칼을 들고 같은 스님들끼리 싸우려 했던 그 사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중에 승복을 벗고 환속했습니다. 저번에도 한 번 와서 만났습니다. 하여튼 그때 제가 그 사람의 참회를 받았더라면, 그는 공부해서 위대한 성자가 됐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참회할 때는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라, 원래 마음에서 지은 씨앗을 씻어 버리면 벌써 그 사람의 마음에서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런 계율을 잘 모르고서 그때 참회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저는 지금도 가끔 뉘우칩니다. 따라서 어떤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설사 세간법은 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출세간법은 마땅히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하면 그때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중금계(四重禁戒)는 다릅니다. 남을 죽인다거나[殺生戒], 훔친다거나[偸盜戒], 음행을 범한다거나[邪淫戒], 또는 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허위로 말하는 등의 망어를 하는[妄語戒] 출가인은 승가 내에서 머물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삼보를 비방하면 선근이 사라진다

열 번째는 방삼보계(謗三寶戒)입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비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앞서 사중의 허물을 말하는 것이나 비슷합니다만, 우리 생명의 뿌리가 되는 성보(聖寶)인 삼보를 비방할 수가 없습니다. 삼보를 비방하면, 그것은 우리의 선근을 멸종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근을 잘라 버리는 겁니다. 착한 선근이 쌓이고 쌓여야 할 것인데, 선근을 없애면 성불이 멀어집니다. 이와 같은 허물 때문에 성불도 못하고 승가를 더럽히고 일반 사회인들도 우리를 불신하게 됩니다. 

특히 여섯 번째의 설사중과계와 열 번째의 방삼보계는 우리 출가인들도 명심해야 할 말씀이지만, 특히 재가불자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계율입니다. 

지금 사회는 자기 허물은 저만큼 두고 남의 허물을 말하는 풍조가 있는 때인지라 우리 스님들도 지나친 비방을 많이 받습니다. 몇 십 년 애쓰고 공부했지만 조그마한 허물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을 그냥 매장시켜 버립니다.

 

2024.01.11 - [불교와 명상/생활법문] - 청화스님 -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말라 feat. 김승호 회장도 개나 고양이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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