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깊게 고민한 스피노자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는 유대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스피노자의 아버지는 말린 과일을 유통업으로 삼고 있었고, 아들인 스피노자는 가업을 잇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였다. 스피노자는 20세 때에 어떤 것이 과연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인지 의문을 던졌고 큰 결심을 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이 덧없고 허무함을 깨달았고, 그것들이 내 마음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자체로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있고 무엇이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찾기로 했다. 바로 이 질문이 스피노자를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스피노자는 처음에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돈, 명예, 쾌락, 이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그러한 것도 좋긴 하지만 쉽게 사라지고 때론 슬픔으로 바뀌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피노자의 행복론은 고대 희랍철학과 닮아 있다. 행복은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저 사람 잘 산다. 이렇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의 현대인들의 행복은 소확행 같은 일시적인 만족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즉,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몸과 정신은 같기 때문에 형이상학, 자연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행복을 정의하기 전에 먼저 형이상학, 자연과학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먼저 해결이 되어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들은 신의 표현이며 신은 바깥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계 자체가 곧 신인 것이다. 신이 곧 세계이다.
스피노자는 과학적 세계관을 모든 곳에 적용을 하는데 과학을 벗어난 영역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질, 정신, 신까지도 이 법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정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체가 기계라면 정신 또한 기계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몸과 정신이 다르다고 주장했다면 스피노자는 몸과 정신은 같다고 본다.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코나투스를 이해하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은 코나투스라고 하여 자신을 보존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 이것은 스피노자 철학의 기본 원리이다. 코나투스 원리에 의하면 능동적 슬픔은 존재할 수 없고 항상 수동적인 슬픔만 존재한다. 수동적인 슬픔은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 작동한다. 기쁨에는 수동적인 기쁨과 능동적인 기쁨이 있는데 우리는 능동적인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능동적인 삶을 살라고 한다. 외부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행복은 능동적이어야 하는 것이라며 자유를 갈망한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어떻게 제시할까? 스피노자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윤리학에서 정신은 코나투스를 이해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행복은 바로 코나투스에 있다고 말이다. 나는 신의 한 부분이다. 신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하고 절대적으로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능동성을 강조했다. 스피노자는 행복은 자기 보존의 역량을 증대시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대로 그렇게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갈망한 철학자이다. 그가 생각한 최고의 행복은 능동적으로 살면서 최대한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덕, 역량, 자유, 능동성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동의어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할 수 있는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능동적으로 삶을 사는 자세가 바로 스피노자가 원하는 삶인 것이다.
행복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행복론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우리는 행복을 생각할 때 얼마나 외적인 요인에 좌우되는가 하고 말이다. 강남에 아파트에 살게 되면 행복하게 될 거야. 아니면 10억을 가지면 행복하게 될까? 요즘 현대인들이 흔히들 하는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은 감각적인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고 좋음이 슬픔으로도 바뀔 수 있고, 외부적인 요인이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나 명예, 쾌락 같은 요인은 외부적인 요인이고 외부적인 요인은 곧 수동적인 기쁨인 것이다. 수동적이라는 말은 바로 ‘내’가 주체적이 될 수 없고 능동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동적인 기쁨에 만족하고 더 큰 기쁨, 능동적인 기쁨을 자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자꾸만 휩쓸리게 된다. 아파트 시세나 주가 시세를 보면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빼앗긴다. 하지만 진실한 행복은 우리가 능동적일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 변호사는 지금은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결혼도 하고 개업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외롭고 쓸쓸한 수험생의 여정이었지만 뭔가 매일매일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능동적으로 살 때 인간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지금은 원하던 대로 변호사가 되었지만 스트레스나 이런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고 한다. 뭔가 자신의 루틴 속에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덕을 발휘할 때 인간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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