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강의/생활법문 / / 2022. 9. 29. 11:28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아내와 믿었던 젊은이에게 배신을 당한 무학대사 | 범부 중생은 언젠가 배신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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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년 ~ 1405년)는 조선 시대의 유일한 왕사입니다. 왕사란 왕의 스승을 말하는데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것을 돕고 도읍지를 한양으로 옮기는 것을 도운 인물입니다.

무학대사 1327~1405

서울에 왕십리라는 곳이 있는데요. 어떻게 해서 왕십리라는 지명이 되었냐면 무학대사가 좋은 도읍지 자리를 보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고 있는데 지금의 한양대 서울 캠퍼스 자리가 엄청난 명당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도인이 와서 여기에서 십리를 더 가면 더 좋은 명당이 있을 것이다 해서 그 말대로 가보니 정말로 명당이 있었고 이렇게 해서 경복궁이 도읍지가 되었고 현재의 한양대 서울 캠퍼스 자리는 왕십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십리를 더 가면 왕의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풍수지리의 대가 무학대사

무학대사는 특이하게도 왕에게 궁궐을 동향으로 지으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예로부터 모든 제왕은 남쪽을 바로 보며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하면서 반박했습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말대로 남향으로 궁궐을 지었는데요. 무학대사는 이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200년에 걸쳐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로부터 200년 뒤인 1592년에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조선에 큰 화가 닥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지요.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의 대가이기도 하였는데요. 그때 무학대사의 말대로 궁궐을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동향으로 지었다면 '조선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내와 믿었던 젊은이에게 당한 두 번의 배신

무학대사는 처음부터 승려는 아니었습니다. 지공, 나옹, 무학 삼대화상으로도 유명하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승 중에 한 명이지만 처음에는 여느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처를 두고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학이 장사하기 위해서 중국에 1년 정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무학은 장사로 중국에서 큰돈을 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선물까지 사서 잔뜩 기대한 채로 집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학은 수소문 끝내 아내가 이웃 촌장의 첩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아내었습니다. 무학은 아내만은 정말로 신뢰를 했었는데 세상에 믿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탄식하였습니다.

큰 충격과 배신을 겪은 무학은 그 이후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어떤 젊은이를 만나 같이 길동무를 하며 여행을 하는데 한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머무는 방에 어떤 백발이 노인이 갑자기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젊은이는 얼른 일어나서 노인에게 잠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여기가 따뜻하니 여기서 주무십시오."

무학대사는 생각했습니다.

'와! 이런 젊은이라면 내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둘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데 갑자기 젊은 청년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떤 사정인지는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젊은 청년이 반나절이나 걸려서 다시 무학대사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무학대사가 무엇 때문에 어딜 그렇게 허겁지겁 다녀오냐고 물으니 짚신에 남의 벼 이삭이 붙어 따라왔다며 그것을 논 주인에게 돌려주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무학대사는 크게 놀라며 이런 양심적인 젊은이라면 분명 하늘이 나에게 보내주신 분이며 분명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같이 사업을 시작하자고 권했고, 젊은이가 이것을 받아들여서 한 3년 동안 같이 일을 하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무학은 3년 동안 젊은이를 지켜보고 완전히 신뢰하기 시작하여 큰돈을 맡기면서 보관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중에 같이 잠을 자던 중에 젊은이가 변소에 나간다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변소에간 젊은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알고보니 그 젊은이는 쪽지 한장 남기고 무학대사가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두 번의 큰 배신을 겪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무학대사는 불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회암사 무학대사비

무학대사가 배신당한 일화를 보면 어떻습니까?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의인도 있지만 중생 범부라는 것이 언젠가는 배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었던 동료나 친구, 가족에게도 사기를 당하는 일이 있지요. 최근에 박수홍이 친형에게 돈을 횡령당해서 소송을 진행 중인 사건만 봐도 그렇고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습니다.

요즘 보면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서 뭔가 배우자에게 덕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은 거의 희생에 가깝습니다. 내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이 사람과는 일평생 한번 살아볼 만하다.'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됩니다. 그런 마음 자세가 아니라면 뭔가 변수가 생길 때에는 다른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다양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실직을 할 수도 있고,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고,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할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빚보증을 잘 못서서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지요. 이런 다양한 변수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잘 지킬 수 있을까요?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거나 배우자가 외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실의에 빠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복을 하기도 합니다. 현명한 불자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중생이란 언젠가 배신하기 마련이지..'


물론 이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겠지만, 불자들은 모든 상황을 담대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더라도 나의 마음을 굳게 바로 잡고 열심히 기도하면 배우자가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착실하게 살 수도 있고요. 불자답게 대응을 잘해야겠지요. 이런 마음가짐을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만약에 발생하면 상대방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파괴적인 마음이라서 실제로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저세상에는 오직 선업이 노잣돈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스스로 해야 하는 외로운 길입니다. 저세상에 갈 때는 아무도 동반하지 못합니다. 진시황 같이 자신의 금은보화를 무덤에 넣는 사람도 있지만 부질없는 짓이지요. 돈도 저세상에는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의 선업만 가지고 갈 뿐입니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세상에서 진정한 동료, 동반자 찾기란 매우 힘이 드는 일입니다.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의심을 하지요? 이런 일이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중생을 너무 믿지 마세요. 범부 중생은 언젠가 배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인과 부처님 말씀에만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학대사의 일화에서 큰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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