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는 조선시대 중기에 승려입니다. 법명은 유정이었으나 당호인 사명당으로 더 유명합니다. 오늘날에는 존경하는 의미로 사명대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주요 업적
그는 승려이자 승병이었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나라를 구했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에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 3500명을 조선으로 귀국시키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보통 구국의 화신이라고 하면 충무공 이순신이 유명한데요. 오늘날 사명대사도 권율 장군과 더불어 구국의 화신으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대사님은 예언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탄허스님처럼 한반도에 대한 예언을 했는데요. 탄허스님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서 예언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의 미래를 보는 안목은 탁월하셨습니다.
사명대사의 생애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대사님은 15세(1558년)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인 16세(1559년)에 아버지를 연이어서 잃은 뒤에 직지사로 출가를 하셨습니다. 출가한 지 2년 뒤인 18세(1561)에 승과에 급제하게 됩니다. 사명대사는 32세의 나이에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묘향산에 서산 휴정대사에게 찾아가 법제자가 됩니다. 봉은사 주지는 그 당시 스님으로서 최고직이었습니다. 그 후로 금강산, 팔공산, 태백산 등 여러 산을 돌아다니며 선수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명대사가 49세가 되던 1592년에 일본이 침략하여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외세가 침략을 하자 스승인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대사를 불러들여 승병을 모집하여 나라를 지키자고 하였습니다. 사명대사는 스님들을 불러 모으면서 다음과 같이 설득했습니다.
지금 이처럼 어렵고 위태로운 때를 만나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
1593년 1월 사명대사는 승병 2000명을 이끌고 평양성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 전투는 아주 중요한 전투였는데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은 명나라군과 함께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적군 200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이런 승병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 일본인들은 마치 부처의 군대와 같다고 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나라의 녹을 먹던 조선의 장병은 겁을 먹고 도망을 쳤지만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은 기이한 기운으로 우리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의 활약한 공을 인정을 받아 당상직(정3품이상)의 벼슬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 승유억불정책 아래 놓여 있는 조선시대 상황으로 볼 때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의 끝난 뒤에도 큰 업적을 세우게 되는데요. 선조의 명을 받아 일본 사신으로 파견을 하게 되는데 이때 사명대사는 일본과 화친을 맺고 잡혀 있던 포로 3500명을 데리고 귀국을 하게 됩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종 2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게 됩니다. 사명대사는 말년에 해인사에서 1610년 67세에 나이에 입적을 하게 됩니다.
사명대사의 일화 중에서 유명한 일화가 몇 가지 있는데 소개해보겠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화
일본인들은 사명대사가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리며 범상치 않은 인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말인지 시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사명대사가 왜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러 가는 길 양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병풍을 여러 개 세워놓았다. 왜장이 사명대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사께서는 생불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다가 보신 병풍에 쓰여있는 글자를 기억하십니까?
대사는 이에 한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웠으나, 구석에 있는 몇 자는 잘 보이지 않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왜장은 군사를 시켜 확인을 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석 부분에는 바람에 의해 병풍이 접혀서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왜장은 사명대사의 비범한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운 예언
사명대사는 예언으로 유명합니다. 탄허스님은 주역에 의한 지식으로 한반도와 주변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서 예언을 했는데요. 사명대사는 비범한 신통력으로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우리 조선이 지금 망국의 기운이 다하고 또한 앞으로 많은 첩경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인 즉 앞으로 우리 조선은 그 기운이 온 천하에 떨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조선이 망국의 위기를 두 번 더 넘긴 후, 또한 나라의 기운이 다한 후 망국이 되고, 또한 나라를 2번 빼앗기고, 또한 우리 동족끼리 싸운 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이 땅의 주인이 될만한 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이 나라를 지배할 것인즉 우리 민족과 나라의 운은 400년 뒤부터 트일 것이나.. 이상하구나 그 이후가 보이지 않으니 하늘의 기운 이란 알 수가 없구나.
이에 나를 따르는 시동 하나를 시켜서 수호 가문을 만든 이 암흑 속에서 대대로 삼부경을 지키고 이 나라의 있을 그 주인 될 자들을 보호하고 따르게 하니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
여기서 망국의 위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뜻합니다. 그 뒤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요. 예언대로 조선왕조는 끝이 나게 됩니다. 나라를 두 번 빼앗긴다는 예언은 일제강점기 때 한번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다음 동족끼리 싸운다고 예언한 것은 바로 한국전쟁으로 해석합니다. 사명대사께서는 예언한 시기인 임진왜란으로부터 400년 뒤에는 한국의 운이 트인다고 말했으니 약 1992년~1998년이 해당이 됩니다. 이 시기는 알다시피 대한민국이 아주 힘든 IMF시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시기로 볼 수 있는데요. 일제침략과 6.25 전쟁.. 정말 정확하게 예언이 들어맞았습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후 400년까지만 예언을 하시고 그 이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너무 먼 미래라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가늠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측면이 있고, 또는 너무 먼 미래라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국가에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사명대사비
사명대사의 신비한 능력은 입적 후에도 지속되고 있는데요. 바로 밀양 표충사에 사명대사의 비에서 국가의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5.16 쿠데타, 8.15 광복절, 6.25 전쟁 때에 많은 땀을 흘렸다고 하네요. 밀양 표충사 신도님들 말에 의하면 사명대사가 도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인의 신통력은 사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봅니다.
사명대사의 담대한 기상을 보여주는 일화
사명대사께서 가토 기요마사와 나눈 문답은 명언으로 전해지고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강심장임을 보여주는 일화인데요. 일본인의 진영으로 몸소 찾아온 사명대사에게 조선의 보배가 무엇이냐고 묻자 사명대사는 조선의 보배는 조선에 있지 않고 일본에 있소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의아하게 생각한 가토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사명대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하오." 하고 답했습니다. 적장인 당신의 목을 갖다 바치면 조선인들에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보배라는 큰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명대사의 기백에 감복한 가토는 대사에 대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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